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로고

미리 써보는 유언

  • 2021. 09. 02
  • 박세연
  • 이 게시글을 602명이 보았습니다.

고마워

난 내 장례식이 행복했으면 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슬펐으면 좋겠어. 내가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이미지로 남았으니깐. 그 사람들도 내가 행복하게 갔길 바라겠지. 그러니 내 장례식 때는 모두 밝게 웃으며 아 세연이는 이런 애였지~ 라고 내 일화들을 마음껏 말해줬으면 좋겠어. 나를 더 이상 못 본다는 거에 슬퍼하지만 내 삶을 기리며 같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그 기억이 오래 가는 사람도, 짧게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공간에서는 모두 나를 생각하도록. 딱딱하고 정직된 상태의 영정사진보다는, 어릴 때부터 내가 죽었을 때까지 내가, 그리구 내 주변 사람들이 나온 영상들을 모두 모아 틀어줬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날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기억하면서 세상을 떠났을테니깐. 온통 검정과 흰색인 옷들보다는 다들 좋아하는 옷들을 입고 와줬으면 좋겠어. 나는 다양한 색을 좋아한 사람이지만, 무채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색의 옷을 입는 사람들을 주변에 뒀으니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날 만났을 때 입었던 옷들을, 아님 본인들이 자주 입었던 옷들을 입어줬으면 좋겠어. 그럼 난 잠시 바닥에 앉아, 나에게 인사하러 와주는 사람들을 좀 더 자세하고 내 삶에서의 그들을 모습을 담아갈게. 난 검정색들로만 가득한 사람들과 내 삶을 함께하지 않았으니깐. 밥은 육계장 대신,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감튀랑 월남쌈, 아빠가 좋아하는 호떡이랑 노각무침, 언니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랑 밀크티 그리고 게찜이 있었으면 좋겠어. 비용이 부담된다면 안해도 돼 :) 그치만, 평소에 내가 많이 못해줬으니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득 주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나를 행복하게 보내주기 힘들거야. 힘들어서 밥도 안먹으면 내가 너무 슬프고 화날 거 같으니깐 좋아하는 음식들 많이 차려서 많이 먹어주라. 그치만 너무 많이 먹으면 안돼! 내가 조금 삐질거야 그럼 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은 뒤 내 모습을 아무도 못 봤으면 좋겠어. 이거는 꼭 지켜주라. 내 마지막 모습을 눈으로 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아줘. 그냥 살아가던 나의 모습을 기억해줘. 내 몸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도록 기증이 되었을 거야. 상처난 내 몸을 보면 다들 더 힘들어할거자나. 다 알아. 그러니깐 그냥 보내줘. 이왕이면 화장을 해서 안 보였으면 좋겠고. 난 사고로, 혹은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했겠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아. 그렇지만 생을 마감했기에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졌을 거야. 너무 고마웠고 사랑했어. 오래동안 담아둘게.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