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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인과 이식인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남편

  • 2019.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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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을 당신을 그립니다"


2012년 1월, 새해를 맞아 세 아이의 아빠, 남편으로서의 계획과 포부를 이야기하던 이현규 씨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 가족과의 새로운 시작 대신 이별을 하게 된 현규 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남편의 사랑을 기억하며 숭고한 생명나눔을 결정한 아내 전수애 씨와 딸 규린 양이 그와의 행복했던 동행을 떠올렸다.


7년 전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어느 날 오전 새벽 5시, 전수애 씨는 8살, 3살, 8개월 된 세 아이를 이끌고 시댁에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 있었다. 전날 밤부터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심한 통증이 있다고 이야기했던 남편은 구토 증세를 보였고, 끝내 의식을 잃고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모유 수유를 하다 나온 전 씨는 쓰러진 남편을 발견하고 황급히 119에 신고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남편은 다행히 의식을 조금 되찾았다. 오랜 검사 끝에 남편은 지주막하출혈이라는 병명을 진단받았고, 이내 긴급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그 다음날 오전,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남편은 묻는 질문마다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하지만 수술 후 2주의 시간이 고비라며 후유증들을 안내하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전 씨는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린 이규현 씨와 가족들의 모습


다행히도 남편의 상태는 점점 호전돼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병원에 온 지 12일이 될 즈음, 의료진은 전 씨에게 남편이 이번 주말이 지나면 곧 일반 병실로 옮겨질 것 같다는 희망찬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깊은 안도감에 전 씨는 8살 된 큰 딸 규린 양과 함께 남편 병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딸기를 입에 넣어주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어요. ‘아빠 회복한 모습 보니까 좋아요’라고 규린이가 이야기하자 좋아하던 모습도 기억이 나요.”


나날이 호전되어 가는 남편의 모습에 다행스런 마음을 품고 집으로 발길을 옮긴 전 씨는 그 다음 날 새벽,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져 검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떠날 줄 알고 그랬는지, 남편이 병실에서 마지막으로 갑자기 제게 이야기를 건넸어요. ‘우리 색시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마워’라고 말이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간 남편은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의료진은 전 씨에게 남편 현규 씨가 뇌사 상태로 추정된다며 장기기증을 안내했다.


“남편의 장기기증을 선택한 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삶으로 숨 쉬며 살아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어요. 그리고 저와 같이 절실한 마음으로 가족의 회복을 바라는 환자의 가족들이 곳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분들의 삶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평소 현규 씨는 거리에서도 어려운 노인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드렸고, 길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를 보면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서라도 물건을 사드렸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따뜻한 성품을 기억하기에 전 씨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택할 수 있었다.


“아마 남편도 상황이 바뀌어 제가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 해도 장기기증을 결정해주었을 거라 믿어요”라고 전한 전 씨의 숭고한 결정으로 2012년 2월 11일, 故 이현규 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신장, 간, 각막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남편의 사랑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엄마 제가 꼭 지켜줄게요. 아빠가 없는 엄마 옆자리에서 도움이 되어드릴게요. 아빠! 우릴 지켜 줄 거죠? 아빠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이 참 다행이에요. 생명을 살리고 간 아빠가 참 자랑스러워요.’



당시 8살 된 큰 딸 규린 양이 전 씨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를 보겠다며 한참 동안 하늘만 바라보는 어린 자녀들의 모습을 볼 때 그토록 가슴이 아팠다는 전 씨. 남편이 떠난 뒤 어린 세 자녀들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 전 씨는 생명을 살리고 떠난 남편을 기억하는 것을 잠시 뒤로 하고 치열한 삶과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7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야 삶의 숨을 고르고 다시금 남편의 생명나눔을 기억하고자 용기를 내 지난해 가을, 딸과 함께 도너패밀리 캠프를 찾게 됐다.


“생계를 책임지느라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도너패밀리 모임에 꼭 한 번 참여하고 싶었어요. 여기 와서 참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며 소중한 시간을 가졌어요.”


캠프를 찾은 전 씨 모녀는 당시 이식인들이 만들어 준 기증인의 이니셜 팔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아빠의 이름, 남편의 이름인 ‘이현규’. 이 세 글자를 얼마나 기억하며 살아왔는지 오히려 저희가 반성했어요. 본부와 이식인들이 먼저 제 남편의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했죠”라고 전 씨가 이야기했다. 이어 규린 양은 “아빠와 같이 생명을 살리신 분들이 이 세상에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학교를 가더라도 제 친구들은 장기기증에 대해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곳에 오니 마음이 참 편하고 좋았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캠프에 참여한 이후 도너패밀리 연말 행사와 각종 캠페인에 참여하며 생명나눔의 의미를 알리겠다고 약속해 준 전 씨 모녀는 이식인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식받은 분들이 가끔 잘 살고 계실까하는 궁금함은 늘 마음에 있어요. 그분들이 이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바라요. 남편이 딸기를 참 좋아했어요. 딸기도 맘껏 드시고 행복한 매일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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