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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

기증인과 이식인

빛을 나눈 고모, 당신은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 2019.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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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혼자서 외롭게 사시며 가난과 싸우는 힘든 삶을 지나온 분, 남에게 신세지기를 싫어해 혹시라도 자신의 존재가 부담을 줄까봐 가족들 앞에도 잘 나서지 않으셨던 분, 그러나 그 뒤에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녔던 분… 

임정희, 임상수 남매가 기억하는 고모 故 임재분 씨의 모습이다.


▲ 각막기증인 故임재분 씨의 생전 모습




강인함 속 감춰진 따뜻한 마음

故 임재분 씨는 전후 세대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오빠, 동생과 함께 작은아버지 집에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자마자 행복을 꿈꾸며 가정을 꾸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마저 오래 지속하지 못했고,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나온 죄책감 속에 평생을 홀로 지내며 가족들과 교류도 끊은 채 외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나마 몇 년에 한 번씩 가족모임에 잠깐 얼굴을 비칠 뿐이었고, 그래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조카들에게 고모는 다가가기 어려운, 무서운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고모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올해 초였다.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가 폐암 진단과 함께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친척들 중 유일하게 서울에 거주하던 상수 씨는 이때부터 고모를 모시고 병원을 왕래했다.


“댁에 가면 고모께서 항상 저를 위해 고기를 구워주셨어요. 성치 않은 몸인데도 조카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 전에 강인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죠. 찾아뵐 때마다 제게 신세를 지는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는데, 그 속에는 ‘네가 와줘서 참 좋구나’라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  빛 을 나누고 떠난 고모를 회상하는 조카 임상수 씨 


그렇게 그는 고모가 투병하는 6개월 동안 평생 만나온 것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 덕분인지 증세가 호전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간으로 전이된 암은 세상과의 작별 순간을 앞당겼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삶을 하나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한 임재분 씨는 우연히 사후 각막기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조카 정희 씨의 도움을 받아 본부를 통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임 씨는 조카들에게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기증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각막은 된다고 하더라. 나는 사라지더라도 누군가 나로 인해 앞을 볼 수 있다면 죽고 나서도 뿌듯하지 않겠니?”라며 살면서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故임재분 씨


“고모께서는 사실 누군가의 도움받는 걸 너무나도 싫어하는 분이셨어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국가의 도움을 받게 되셨는데 그것조차 부담스러워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만난 한 자원봉사자께서 한 달에 한 번씩 고모를 찾아와 식사를 대접해주신 거예요. 늘 홀로 계셨던 분이었기에 누군와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으셨던 것 같아요.”



생명나눔으로 전한 세상과의 화해

자원봉사자에게서 받은 따뜻한 마음은 임재분 씨에게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몸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심었고, 그렇게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마친지 보름만인 지난 7월 2일 눈을 감았다. 8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다행히 그의 양쪽 각막은 32세와 77세 남성에게 각각 무사히 전달돼 새로운 빛을 선물했다.


지나고 보니 고인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투로 다가가지는 못하더라도 솔직하고 담백한 행동으로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비록 이 땅에서 많은 고생을 하며 남들처럼 꿈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지만, 그러한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떠나는 순간 마치 그 세상과 화해하는 듯 생명을 나눈 고모의 모습에 조카들은 크나큰 감동을 받았다.


▲  故임재분 씨의 조카 임정희씨(오른쪽)와 임상수 씨 


“고모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셨어요. 자녀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반려견에게 맘껏 주시며 그 앞에서만큼은 정말 환하게 웃으셨던 기억이 나요. 이식받으신 분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고모께서 전한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하늘나라에서 고모도 활짝 웃으실 거라 믿어요. 고모, 이 땅에서는 힘들게만 살다 가셨는데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큰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편안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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