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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다음에 남기고 싶은 것은?”

  • 2021.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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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산나눔재단에서 진행하는 ‘아산프론티어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김동엽 사무처장을 만나게 되었다. 장기기증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생명나눔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몇 년 후 출석하고 있던 교회에서 장기기증 캠페인이 진행되어 희망등록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막상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려고 하니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이 기증하기에 괜찮을까?’, ‘내 몸속 장기의 상태는 어떨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망설여졌다. 함께 있던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의사를 철회할 수도 있으니 일단 해보자는 말에 희망등록서를 작성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한 후 운전면허증 재발급을 받자 사진 하단에 ‘장기기증’이라는 문구가 찍혀 나왔다. 신분증을 꺼내며 ‘장기기증’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가치 있는 일을 한 것 같아 마음 한편에서 뿌듯함이 일었다. 사실 캠페인 현장에서 내 앞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서가 놓이기 전까지는 장기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없었다. 나 자신이나 내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는 게 싫었고, 거룩하고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내가 참여하자니 꺼려지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장기기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결국 내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활동량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체중도 많이 늘었다. 답답함과 무기력함도 느끼게 돼 몸과 마음이 모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한 선택이 운동이었다.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며 내 몸에 맞는 운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매주 2번씩 헬스장을 찾아 코치가 시키는 대로 운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힘들어 헬스장에 가기 싫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2주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컨디션이 좋아지고, 몸과 마음에 활력도 되찾은 것 같았다. 내친김에 단거리 마라톤도 시작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5km, 10km를 달리다 보니 두통과 마음의 답답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운동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성경을 묵상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고, 유튜브를 통해 ‘홍홍라이브’라는 개인 방송도 시작했다. 매주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인데, 한 날은 한국모금가협회의 황신애 이사를 모시고 유산기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황 이사는 자신이 좋아했던 곳이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기부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유산을 남기고 싶다면 죽음이 임박했을 때가 아니라 미리 준비하고, 매년 유서를 쓰며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놀라운 것은 유산이 돈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몸도 유산이 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죽은 다음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찾은 답은 ‘도움이 되었다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내 이름’이었다.  


먼 훗날, 세상을 떠나며 실제로 장기기증을 하게 되었을 때, 나의 생명을 이어받은 누군가는 ‘도움을 준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생명을 선물 받은 몇 사람의 마음속에, 또 그 가족들의 마음속에 고마운 사람으로 내 이름이 남는 일, 그것이 결국 내가 세상을 떠나며 가장 남기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닐지…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에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다. 결국 도움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일이다. 내 몸에 맞는 운동을 배워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개인 트레이닝을 하듯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내 삶을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 이것이 곧 가치 있고 기쁜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었던 죽음을 미리 떠올려 보고, 죽음 이후에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 나의 이름, 모습, 흔적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점검하는 일은 보다 성숙한 삶의 태도를 갖게 해준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귀하고 값진 인생의 주인공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장기기증은 거룩한 뜻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남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친절을 건네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기기증 희망등록이라는 어찌 보면 작은 약속 하나로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희망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도움을 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다.


홍원준 

조선비즈 사업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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