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야기
기증인과 이식인
생명나눔은 삶의 의미를 가르쳐준 스승님
- 2024.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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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남편이 순수 기증인에게 신장을 이식받고 새 인생을 살게 되자, 1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도 타인을 위해 생명을 나누겠다며 기꺼이 수술대에 오른 이가 있다. 올해로 기증 30주년을 맞은 생존 시 신장기증인 황인원 씨다.

생존 시 신장기증인 황인원 씨
첫사랑을
이루다
황인원 씨와 그의 남편 안희준 씨는 1967년 인천의 교육대학에서 신입생으로 만났다. 안 씨의 회고록에는 당시를 "1967년은 나의 동반자인 황인원을 운명적으로 만나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 벌렁대던 때였다.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무작정 걷는 재건 데이트를 많이 했다."로 기록하고 있다. 황 씨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안 씨에게 남몰래 데이트 비용을 쥐여 주며 배려 깊은 사랑을 이어갔고, 1971년 2월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함께 여행을 자주 즐겼던 두 사람의 모습
"결혼해 보니 남편은 더 좋은 사람이었어요. 음식 타박 한번 없 이 무엇이든 맛있게 먹어주었어요." 두 사람은 교직 생활에 충 실하면서도 아들, 딸을 키우며 20년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991년 신우신염으로 투병하기 시작한 안 씨가 1992년 복막투석을 받기에 이르면서 위태로운 날들이 이어졌 다. 황 씨는 아픈 남편을 위해 당장에라도 신장을 나누고 싶었지만, 혈액형이 맞지 않아 이내 좌절해야 했다.
생명의 선물,
배턴 터치!
1991년 본부를 통해 국내 최초의 생존 시 신장기증이 이루어졌을 당시 신문을 보고 이를 알게 된 황 씨는 곧장 본부 사무실을 찾았다. 그렇게 안 씨는 아내의 도움으로 본부의 신장이식 대기자가 됐다. 그리고 1993년 9월, 기적처럼 새 삶을 선물 받았다.
"이름도 기억해요. 이윤자 씨. 생면부지 타 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선 순수 기증인이었어요." 이 후 건강을 되찾은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식만이 만성 신부전 환자와 그 가족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선 황 씨는 1994년 8월, 신장기증을 결심했다.
"수술 후 통증도 대수롭지 않았어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 온 황 씨의 신장을 기증받는 이식인은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었다.
"언젠가 그 아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는데,
이식 후에 키가 훌쩍 큰 거예요.
어찌나 기특하던지,
벌써 30년이 흘렀으니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지
보고 싶어요."
생명나눔 운동은
계속된다
기적처럼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안 씨이지만, 그는 2010년 임파선 암을 진단받으며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이후 3개월 만에 세상에 영원한 이별을 고한 안 씨는 생전의 뜻대로 시신기증을 실천했다.
황 씨는 생명을 선물 받고 생명을 남긴 남편의 삶을 반추하며, 사별 이후 생명나눔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새생명나눔회의 일원이 되어 장기기증 캠페인과 여러 기념행사에 참여했고, 현재까지 경인지회 총무로 활약 중이다. 또 지 난 6월에는 라파의 집을 찾아 만성 신부전 환자들을 위한 음악 회와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더하기도 했다.

몇 년 전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황 씨는 지금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학습 도우미로 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나이에도 교육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황 씨는 이외에도 성당 자모회, 아파트 운영 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걷기 운동을 빼 놓지 않는다.
"제가 건강하게 살아야
신장기증인의 본이 될 수
있잖아요. 하하하."
생명나눔 운동에 대한 황 씨의 열정은 그의 밝은 웃음처럼 지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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