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1월 3일이면 제가 폐 이식을 받은 지 3년이 됩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안 좋았던 저는 고등학생이던 17살 때 이미 폐 기능이 39%밖에 남지 않았었어요.
병원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폐 기능이 더 안 좋아질 거라고 했고 조심조심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하며 그렇게 숨이 차지만 일상생활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기에 병원에서 이야기한 그 시간이 더디게 올 줄만 알았어요.
중간중간 폐렴이나 기흉으로 병원 생활은 했지만 좀 더 오래 제 폐를 통해 생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후 10년이 지나 제가 서른 살을 넘겼을 때 이미 폐 기능이 29%까지 떨어져 급속도로 악화돼 걸을 때마다 숨이 찰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졌어요.
그 뒤로는 집 앞 슈퍼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서 매번 주저하다 집을 나섰어요. 숨이 차는 건 물론이고 끝없는 기침과 울컥 올라오는 가래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도 꺼려졌고요.
그렇게 집안에서 겨우 생활하며 지내다 결국은 2016년 새해 첫날 새벽부터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이후 제 폐는 이제 가망이 없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 때까지도 이식은 생각도 못 했고 그저 나는 이렇게 살다 죽는구나 절망했습니다.
난 아직 이렇게 나이도 얼마 안 됐는데 해보지 못한 일도 너무 많은데, 내내 아프다가 평생 기침만 하고 가래만 뱉어내다 죽는구나 억울하고 화만 났어요...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며 안 좋은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또 응급실로 들어가 입원하게 된 어느 날 다른 때와 달리 호흡기내과가 아니라 흉부외과 진료를 받게 되면서 이식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이미 2008년에도 국내에서 폐 이식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치료받던 교수님께 들었지만, 먼 미래의 얘기라 생각했고 이미 그 교수님은 정년퇴직하신 뒤였어요.
그렇게 폐 이식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상담을 받았지만, 쉬운 선택이 아니더라고요. 누군가의 커다란 희생으로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도 무겁게 다가왔고
이식 수술 자체도 무서웠습니다. 게다가 언제 기증자가 나올지도 알 수 없어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었구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숨이 차는 고통이 커지니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증을 기다리며 보내던 1년여 동안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몸의 고통에 괴로워 언제
기증자가 나올까 애가 타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 내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식을 받게 되면 어떻게든 회복을 해서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을 했어요. 매일 이미 폐 이식을 받은 환우 카페에 들어가 그분들의 회복 수기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수술 후 다시 눈을 뜬다면 무조건 이 악물고 침대에서 일어나 내 발로 서겠다고...
이미 먼저 수술받은 분들이 무조건 걸어야 하고 운동해야 산다고 했거든요. 저는 그렇게 기다리다 2017년 11월 3일 기적 같은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1월 5일 중환자실에서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전 결심한 것처럼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려 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병실로 올라와 회복하려고 노력했어요.
솔직히 그 한 달 동안 너무 아파 소리 지르며 울기도 많이 했고 걷기와 숨쉬기 연습을 하며 많이 두려워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무서워서 가슴의 수술 자국은 쳐다볼 자신도 없었어요. 하지만 환자복 위로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내게 폐를 주신 그분과 함께 건강하게 살고 싶다구요...
제가 받은 이 큰 희생과 기적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요.
많은 약들과 주삿바늘에 너무 괴로울 때마다 침대에서 징징대다가도 정신 차리고 이젠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란 생각을 했어요.
원초적으로 울고불고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 삶의 무게가 2배가 됐구나’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한 달, 3개월, 6개월, 1년의 고비들을 넘기고 2년이 넘어가는 내내 마주하는 일상이 모두 행복했습니다.
내 발로 숨차지 않게 걸으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이젠 계단이 나타나도 무섭지 않고 태어나서 해본 적 없는 등산도 해보고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개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혼자서 머리를 감을 수 있고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젠 종종 제 가슴의 흉터를 보면서 손을 얹고 얘기합니다. 아프지 않고 저와 지금처럼 함께 해달라구요.
앞으로 제가 어떤 일들을 더 하게 될지 모르지만 기적 같은 기회를 얻은 제 생명으로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저보다 두어 살 더 나이 많은 분이었단 것밖에 모르지만, 지금 숨을 쉬고 있는 폐는 그분의 것이고 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항상 제 삶이 저만의 것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어요.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힘내서 노력하며 잘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