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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인과 이식인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남편의 따뜻한 사랑

  • 2019.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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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입에 달고 살던 남편의 마지막 인사

뇌사장기기증인 故 정봉교 씨의 아내 김정희 씨




교회 주방에서 무거운 김치통을 꺼내야 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 할머니 권사님들이 칼을 갈아달라며 들고 찾아오는 사람. 故 정봉교 씨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든 타인을 도와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늘 부담 없이 부탁할 수 있는 집사님. 고인이 생전 다니던 교회 성도들은 그를 이렇게 추억합니다.


▲ 김정희 씨와 故 정봉교 씨의 행복했던 한 때


그날도 어김없이 故 정봉교 씨는 교회에서 수련회 중인 아이들을 위해 고기를 구워주고 있었습니다. 평소 가벼운 질병에는 면역력을 키운다며 약도 복용하지 않던 그였지만, 며칠 전 독감에 호되게 걸려 병원에 다녀온 뒤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생부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아내인 김정희 씨가 보기에도 그날의 남편은 다른 날과 사뭇 달랐습니다. 정봉교 씨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결국 다시 찾은 병원에서 검사 결과 ‘소뇌 박피’라는 뇌 질환을 진단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크게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몇 주 뒤 그는 식물상태에 빠지게 됐습니다.


갑작스런 남편의 사고에 아내 김정희 씨는 여러 병원을 오가며 간호에 힘을 쏟았고, 그 시간은 1년이나 이어졌습니다. 아내의 극진한 정성 덕분인지 꾸준한 재활을 통해 정봉교 씨는 의식을 되찾는 등 호전 증세를 보였는데요. 그러나 회복될 것이란 기대도 잠시, 올해 초 그에게 갑작스러운 심정지가 찾아왔습니다. 


“그날 새벽에 자는데 남편한테서 숨소리가 나지 않는 거예요. 일어나서 봤더니 이미 얼굴이 창백하고 손을 만져보니 차갑더라고요. 급한 대로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의료진을 불렀고 다행히 다시 숨을 쉬긴 했는데, 오랜 시간 숨을 쉬지 못해 결국 뇌사로 추정된다는 판단을 듣게 됐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정희 씨는 남편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남편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 나눔을 실천하고 눈감은 남편을 추억하는 김정희 씨



나눔이 일상이던 남편…떠나면서까지도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기도를 하며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뇌사에 대해서 찾아보았고, 담임목사의 소개로 병원을 찾은 본부 김동엽 사무처장으로부터 장기기증 절차 등 자세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때 문득 오래 전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정희 씨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남편 친구 중에 만성신부전으로 혈액 투석을 받는 이가 있었는데 뇌사자로부터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회복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나도 혹시 나중에 세상과 작별할 때, 내 몸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김정희 씨는 남편의 뜻을 존중해 장기기증을 결정했습니다. 평소 다정하고 따뜻한 아버지를 존경해온 두 아들도 어머니의 결정에 흔쾌히 동의해주었고, 지난 2월 16일, 세브란스병원에서는 故 정봉교 씨의 뇌사 장기기기증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고인의 양쪽 폐와 간, 그리고 2개의 각막은 모두 5명에게 전달돼 새 생명과 빛을 선물했습니다. 생전 남에게 퍼주는 것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이 이 땅을 떠나면서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입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늘 미소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하며 인사를 건넸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사랑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며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랑과 나눔이 몸에 밴 사람이었어요. 가진 것과 관계없이 나누기를 좋아했고, 건축업을 했지만 사실 사업이라기보다는 봉사에 가까웠을 정도니까요. 정말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나누고 간 것 같아요.”



▲ 기증인 정봉교 씨 가족



김정희 씨는 빈소에 세워진 ‘당신의 사랑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라는 본부 근조기를 보고 물어오는 조문객들에게 생명나눔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장기기증의 참된 가치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하기도 했는데요.  자녀들에게 '엄마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망설임 없이 장기기증을 선택해달라'며  당부했다고 합니다.

 

끝으로 자신을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에게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따지고 싶다”면서 슬쩍 서운함을 내비친 김정희 씨. 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내’라고 불러주던 최고의 남편을 다시 만난다면 “너무 보고 싶었노라고, 그리고 당신이 남기고 간 사랑이 지금도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노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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