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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

기증인과 이식인

천국으로 가는 열쇠

  • 2024.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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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장기기증의 날 기념행사에서 백발이 성성한 최고령 기증인이 '기증 30주년 기념패'를 수여받았다. 1992년, 58세의 나이로 기꺼이 자신의 신장 하나를 나눈 생존 시 신장기증인 홍금실 씨다.







하늘나라 

여행갈 준비


올해 아흔이 된 홍금실 씨는 평안북도 출신으로, 유아 세례를 받은 이후 줄곧 삶 전반의 뿌리를 신앙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홍 씨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와 묵상, 성경 읽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1988년부터 출석한 경기도 성남시의 할렐루야교회는 집에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이지만, 일주일에 네 번이나 출석하며 40년 가까이 예배당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가대원으로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홍 씨에게는 청춘 못지않은 활력이 느껴진다. 


"내 나이 아흔에 이제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해야지요. 나는 오로지 하나님만 섬깁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니 기쁨이 넘치지요."




신장기증은 

하나님의 은혜


홍 씨는 생존 시 신장기증을 결심하기까지 여러 차례 부르심이 있었다고 반추했다. 먼저 1979년 한 달간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드릴 때였다. "마지막 날이 주일 아침이었는데, 성령이 임하기를 병을 고치는 은사를 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를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홍 씨는 훗날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서 사후 각막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생명나눔에 뜻을 둔 홍 씨는 열심히 외워온 장기기증 관련 전화번호를 달력에 적어두었지만, 바쁜 생활에 치여 그만 잊고 말았다. 그러다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국내 1호 생존 시 신장기증인 박진탁 목사의 간증을 듣게되었다.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결국은 믿음이 없었구나,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지금 신장이 망가져서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나눠야지,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이후 홍 씨는 세탁기를 돌릴 때도, 밥을 할 때도, 심지어는 잠에 들어서도 신장기증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고 회고했다.




생명나눔이 맺어준 

네 번째 아들


홍 씨가 본부에 생존 시 신장기증 등록을 마치고 한 달 후쯤 신장을 이식받을 환자가 정해졌다. 그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20대 청년 이찬선 씨로, 부모를 여의고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식수술에 큰 기대를 하고 있을 청년을 생각하면서 꼭 기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당시 홍 씨는 우유를 배달하며 세 아들과 딸을 홀로 키우고 있었지만, 굳은 결심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1992년 신장기증 수술을 위해 입원한 모습



1992년 4월 20일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에서 홍씨의 신장기증 수술이 이루어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24cm나 되는 큰 수술 자국과 극심한 통증이 뒤따랐다. 


"매일 아침 주치의가 괜찮으냐고 물으면 '예, 좋습니다.'라고만 대답했어요. 왜냐면 기분이 좋았거든. 하나님 말씀을 지켰다는 게 오히려 감사했거든요."


이식인과의 인연은 이어져 수술 3년 후 홍 씨는 그가 선물한 고운 한복을 입고 이 씨의 결혼식에 참석해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이후로는 자신의 존재가 부담될 것 같아 자연히 멀어지긴 했지만, 홍 씨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식인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건강의 비결이라는 거 

별거 없어요. 

보약보다 좋은 게 

선한 마음이에요." 





홍 씨는 선하게 사는 것만이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당부하며, 하늘나라 가는 그날까지 생명나눔 운동을 응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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