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이웃
선한이웃 Vol.261
2024 07+08
- 네버엔딩스토리믿음으로 피운 꽃
- 네버엔딩스토리반쪽이기에 행복한 우리 모자母子
- 네버엔딩스토리하나의 심장에서 탄생한 세 명의 생명
- 생명의 물결만성신부전 환자 지원사업 제주 라파의 집 음악회 ‘선물'
- The 나누는 사람들나눔은 '사랑의 합창'입니다
5건의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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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스토리
믿음으로 피운 꽃
2011년 오색 단풍이 너울거리던 가을날,신광희 씨의 남편 김화섭 씨는 신장, 간, 각막 등 5개의장기를 기증하고아름다운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뇌사 장기기증인 故 김화섭 씨의 아내 신광희 씨제멋대로였던남편서울 강서구에서 수선가게를 운영하는 신광희 씨는 손끝이 야무지고 미적 감각이 탁월해 오랜 세월 옷짓는 일을 했다. 본인의 장점을 살려 젊은 시절 의류 회사에서 근무했던 신 씨는 동갑내기 동료인 김화섭 씨를 만나 2년간의 연애끝에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신 씨의 기대와 달리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연애할 때만 하더라도 온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가부장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이었어요.입도 짧아서 매일 새로운 음식을 하느라 힘들었어요."생활력과 거리가 멀었던 남편은 직장을 옮기는 일이 잦았고, 애정 표현에도 서툴러 신 씨 혼자 마음을 태우는 세월이 길었다. 신 씨는 사랑하는 딸과 신앙이 있었기에 고된 결혼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남편이 세상에 남긴마지막 사랑김화섭 씨는 성격만큼이나 무뚝뚝하게 세상을 떠났다. 2011년 10월,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피자를 배달해 맛있게 나눠 먹은 날이었다. 그날따라 웬일로 솔선해서 깨끗하게 뒷정리를 마친 남편은 여느 때처럼 저녁 어스름에 오토바이를 끌고 외출에 나섰다. 그리고 늦은 새벽녘, 잠에 들지 않아 뒤척이던 신 씨에게 불길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급히 와달라는 병원의 전화였다. 긴 수술과 검사가 이어졌고, 신 씨는 남편의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3주 남짓 중환자실을 오가며 남편에게 품었던 원망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어요." 신 씨는 신앙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에 남편과 장기기증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과 언젠가 자신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1955년 신혼여행으로 갔던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남편은 사고뭉치였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어요.그런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웠을 거예요." 2011년 10월 27일, 김화섭 씨는 환자 5명의 생명을 살리고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나눔으로 이어가는 딸하루아침에 남편이 떠난 후 신 씨는 혼자가 된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의식됐지만, 먹고 살기가 바빠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이 잘 성장해서 자기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숙제였어요."신 씨가 극진한 사랑으로 키운 외동딸 김미소 씨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기력증으로 이어져 잠깐의 방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딸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에 나서는 신 씨의 깊은 애정 덕분에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올해 26살인 김 씨는 의상 디자인과 회계학을 공부하다 사회복지학으로 전향해 현재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신 씨가 내면 깊은 곳에 약자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사회복지사가 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지난 2월 본부의 D.F장학생으로 선발된 김미소씨는 마지막 학기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지난 2월 19일 제5회D.F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된 딸 김미소 씨신 씨는 아직도 이따금 남편과의 신혼여행을 회상하곤 한다. 제주도에서의 2박 3일,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결혼 생활 중남편이 가장 다정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꿈에 나타나는 남편은 신혼 때 모습 그대로다. 더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지 않다는 신 씨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전했다."여보. 그곳에선 화내지 말고,항상 웃으면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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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스토리
반쪽이기에 행복한 우리 모자母子
밝게 웃는 모습이 꼭 닮은 어머니 엄해숙 씨와 아들 윤현중 씨.한마음 한뜻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 모자에겐 특별한 공통점이 또 있다.두 사람 모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면부지 환자에게 신장 한쪽을 나눈 생존 시 신장기증인이라는 것이다.생존 시 신장기증인 엄해숙 · 윤현중 모자삶의 풍파 속에서도빛나는 나눔의 힘"어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홀로 두 아들을 키우시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하셨죠." 50여 년 전,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화장품 판매부터 보험설계사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엄해숙 씨. 엄 씨는 여성의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두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타지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로 힘든 세월을 이겨냈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이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인정이 많았던 엄 씨는 늘 나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저는 소망이 있었어요. 아들들이 독립하게 되면 남은생은 꼭 제 손과 발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이요."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엄씨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간을 나누고자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엄 씨의 용기에도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간기증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3개월 뒤 그는 엄 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이를 계기로 장기기증의 가치를 절실히 깨달은 엄 씨는 수소문 끝에 본부를 찾아와 신장기증을 약속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엄 씨의 생명나눔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만성신부전 환자가 새 삶을 얻을 수 있었다."처음 이식인을 만났을 땐 손바닥이 노랬었는데, 갈수록 손바닥과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보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던지요. 기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생존 시 신장기증인 엄해숙 씨이후 엄 씨는 2012년 전국 새생명나눔회 회장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경기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13년째 생존 시 신장기증인 및 이식인들과 함께 생명나눔 운동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어머니는 내 인생나눔의 등불"아픈 환자가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 싶을 거예요." 14년 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금장 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헌혈에 참여해 온 아들 윤현중 씨. 넉넉지 않은 시절에도 소외된 이웃을 섬기던 어머니의 온정은 아들의 삶에 나눔의 등불이 됐다."어머니의 신장기증을 지켜보며 저도 더 늦기 전에 새 생명을 간절히 기다리는 분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요."윤 씨는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생명을 나눈 어머니를 본받아 신장기증을 결심했고, 2011년 12월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 속에 8년간 만성신부전으로 투병하던 30대 남성에게 생명의 기적을 선물했다.2011년 12월 윤현중 씨의 신장기증 당시 방송 인터뷰 화면(출처 YTN뉴스)"신장기증 후 이식인을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날은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이식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저까지 세사람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새 삶을 선물 받은 이식인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바랍니다."생명나눔의 산증인인 엄 씨 모자는 현재 운영 중인 사업장을 생명나눔가게로도 등록하며 장기기증의 숭고함을 알리는 일에목소리를 더하고 있다."신장기증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앞으로도 장기기증의 고귀함을 널리 알리는 일에 함께하고 싶어요."생명나눔 문화의 정착을 소망하는 두 사람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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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물결
만성신부전 환자 지원사업 제주 라파의 집 음악회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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