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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인과 이식인

“남편의 숨결이 아직 세상에 남아있어요”

  • 2021.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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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5일, 박미정 씨의 남편 故 오철환 씨는 뇌사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4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라일락꽃 향기를 맡으면 가장 먼저 남편이 생각나요”

박미정 씨는 매일 아침 현관을 나서며 출근길 인사를 건네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한 마음 한편에 깊은 그리움이 차오른다. 신입사원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아들의 모습이 남편의 모습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생전 일터에 나가기 전 박 씨가 손수 준비해 놓은 깨끗한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당신이 최고’라고 웃어주던 남편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마음이 깊은 사람이었다. 목장을 운영했던 순박한 청년 오철환 씨는 세련된 외모에 소녀 같은 마음씨를 지닌 박미정 씨를 만나 첫눈에 사랑을 느꼈다. 일 년여의 연애 끝에 서로의 진실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아들딸을 낳아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봄이 되면 아파트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향기로운 라일락꽃을 꺾어다 박 씨의 코끝에 흔들어줄 만큼 다정했고, 지방 출장 중에 먹어본 맛있고 귀한 특산물들은 언제나 한아름 사와 가족들을 먼저 챙길 만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생명을 나누고 떠난 남편이 자랑스러워요”

2004년 11월의 어느 날,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박 씨는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출발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마중을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도착할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오철환 씨는 오지 않았고, 가까스로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남편의 자동차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박 씨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위중한 상태에 빠진 남편의 곁을 지켰다. 슬픔에 빠져있던 박 씨에게 의료진은 뇌사가 추정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장기기증을 권유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장기기증을 결심했어요. 그냥 떠나보내기에는 남편이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거든요.” 


모든 일이 갑작스러웠지만, 남편의 숨결을 세상에 남겨야겠다는 박 씨의 생각만큼은 분명했다. 생전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어려운 이웃을 모른 척 하지 않았던 남편의 생명이 누군가에게 이어진다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박 씨는 기증을 마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어요. 남편이 평온하게 떠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많은 부분을 배려해 주신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후 박 씨는 이식인의 소식이 궁금해 몇 차례 병원 측에 요청했지만,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교류가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됐다. “서신만이라도 주고받을수 있다면 큰 위로가 될 텐데……. 멀리서나마 건강하시기를 빌고 있어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행복을 빌어요”

올해 구정을 며칠 앞두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 녹초가 되어 귀가한 박 씨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바로 본부가 설날을 맞아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해 준비한 연하상자였다. “떡국 떡을 보자마자 남편이 하늘나라에서 보내준 설날 선물이란 게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선물을 열어 본 박 씨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고단한 시간을 보낸 자신을 남편이 위로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떠난 후 힘든 순간이 많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었지만, 늘 빠듯한 살림살이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다는 미안함이 박 씨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특히 두 아이가 모두 대학생일 때는 학비를 감당하기 버거워 본부에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을 위한 장학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편지도 보냈다. “당시에는 ‘D.F(Donor Family) 장학회’가 출범하기 전이라 혜택을 받을 수도 없었어요. 2년 전 장학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어요. 제가 예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아이들도 부모님이 생명을 살렸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박 씨는 모진 세월에도 생전 남편에게 받은 무한한 사랑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며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끝으로 자신처럼 배우자를 먼저 떠난 보낸 도너패밀리에 대한 위로도 잊지 않았다. “있는 힘껏 견뎌보기로 해요. 살다 보면 행복한 날이 더 많을 테니 용기를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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