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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인과 이식인

믿음으로 피운 꽃

  • 2024.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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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오색 단풍이 너울거리던 가을날, 

신광희 씨의 남편 김화섭 씨는 신장, 간, 각막 등 5개의 

장기를 기증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뇌사 장기기증인 故 김화섭 씨의 아내 신광희 씨




제멋대로였던 

남편


서울 강서구에서 수선가게를 운영하는 신광희 씨는 손끝이 야무지고 미적 감각이 탁월해 오랜 세월 옷짓는 일을 했다. 본인의 장점을 살려 젊은 시절 의류 회사에서 근무했던 신 씨는 동갑내기 동료인 김화섭 씨를 만나 2년간의 연애끝에 가정을 이뤘다. 그러나 신 씨의 기대와 달리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연애할 때만 하더라도 온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가부장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이었어요. 입도 짧아서 매일 새로운 음식을 하느라 힘들었어요." 


생활력과 거리가 멀었던 남편은 직장을 옮기는 일이 잦았고, 애정 표현에도 서툴러 신 씨 혼자 마음을 태우는 세월이 길었다. 신 씨는 사랑하는 딸과 신앙이 있었기에 고된 결혼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사랑


김화섭 씨는 성격만큼이나 무뚝뚝하게 세상을 떠났다. 2011년 10월,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피자를 배달해 맛있게 나눠 먹은 날이었다. 그날따라 웬일로 솔선해서 깨끗하게 뒷정리를 마친 남편은 여느 때처럼 저녁 어스름에 오토바이를 끌고 외출에 나섰다. 그리고 늦은 새벽녘, 잠에 들지 않아 뒤척이던 신 씨에게 불길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급히 와달라는 병원의 전화였다. 긴 수술과 검사가 이어졌고, 신 씨는 남편의 인생이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3주 남짓 중환자실을 오가며 남편에게 품었던 원망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어요." 신 씨는 신앙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에 남편과 장기기증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과 언젠가 자신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1955년 신혼여행으로 갔던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


 "남편은 사고뭉치였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니 스스로 자랑스러웠을 거예요." 2011년 10월 27일, 김화섭 씨는 환자 5명의 생명을 살리고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맞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나눔으로 이어가는 딸


하루아침에 남편이 떠난 후 신 씨는 혼자가 된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의식됐지만, 먹고 살기가 바빠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이 잘 성장해서 자기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숙제였어요."


신 씨가 극진한 사랑으로 키운 외동딸 김미소 씨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기력증으로 이어져 잠깐의 방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딸을 위해 매일 새벽기도에 나서는 신 씨의 깊은 애정 덕분에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올해 26살인 김 씨는 의상 디자인과 회계학을 공부하다 사회복지학으로 전향해 현재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신 씨가 내면 깊은 곳에 약자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사회복지사가 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지난 2월 본부의 D.F장학생으로 선발된 김미소씨는 마지막 학기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19일 제5회D.F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된 딸 김미소 


신 씨는 아직도 이따금 남편과의 신혼여행을 회상하곤 한다. 제주도에서의 2박 3일, 호화로운 여행은 아니었지만 결혼 생활 중남편이 가장 다정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꿈에 나타나는 남편은 신혼 때 모습 그대로다. 더는 남편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지 않다는 신 씨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전했다.



 "여보. 그곳에선 화내지 말고, 

항상 웃으면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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