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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의 심장을 둘러싼 24시간,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201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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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1개 문학상을 휩쓸며 2014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책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연출 민새롬, 제작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그룹 일다)'가 모노극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2019년 12월 21일까지 우란문화재단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포스터



사람들은 대개 죽음과 직면했을 때 다섯 단계의 감정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받아들임. 자신에게 닥친 일을 부정하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분노하다가  현실을 수용하고 초연해지기까지 여러 변곡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24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모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그 질문에 답이 될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극은 삶을 사랑한 청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을 둘러싼 모든 인물의 24시간을 숨 가쁘게 따라간다. 시몽은 친구들과 새벽 서핑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의 뇌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뇌사 상태’에 빠졌지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거친 파도에 올라타 마침내 그의 몸이 세상과 수평을 이룰 때 그랬던 것처럼. 첫사랑 줄리엣과 입 맞출 때 그랬던 것처럼. 


시몽의 부모는 아들이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중한 아들은 그저 조용히 잠든 것처럼 보였고, 그의 가슴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호흡에 따라 오르내림을 반복했다.은 슬픔과 혼란에 빠진 부부에게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토마는 유감을 표하고, 조심스레 ‘장기기증’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온전히 그들에게 있음을 알린다. 시몽의 부모는 분노와 타협, 체념을 거쳐 숭고한 결정에 이른다. 생의 잠재력을 잃지 않은 시몽의 심장은 오랜 시간 심근염에 시달렸던 이식인 끌레르의 가슴으로 옮겨져 다시금 피를 머금고 맹렬히 뿜어낸다.



시몽은 서핑을 사랑하는 열아홉 살이었다. 시몽과 같은 모든 기증인들은 각자 사랑하는 것이 있는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인간에게는 생과 사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권한이 유일하게 전복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장기기증’을 결정하는 때가 아닐까. 가족의 선택에 따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새 삶을 얻기도 하고, 죽음도 그냥 죽음이 아닌 것이 된다. 시몽이 사랑했던 거친 파도의 높낮이를 닮은 심전도 그래프가 모니터 위에 되살아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미처 슬픔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이 장기기증을 고민해야 하는 가족의 상황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원한 적도, 바란 적도 없는 신의 선택권을 잠시 빌려 쓴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다. 거부할 수만 있다면 백이면 백, 모두가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책과 연극이 아닌, 현실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나왔을 도너패밀리의 얼굴 하나하나가 눈앞에 어른거려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들 역시 외면할 수 없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극중 시몽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에게 ‘내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그들의 사랑, 헌신이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그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더욱 귀중하게 느껴진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의 손상규, 윤나무 배우



연극은 원작의 유려하고 섬세한 표현을 배우의 담백한 연기에 담아내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한 명의 배우가 청년의 장기 기증 과정에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기한다. 무려 1인 16역이라고 한다. 각 인물이 겪는 상황,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이야기는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지나치게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극이 온 이야기를 관통하며 오롯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시몽의 심장, 그 뿐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극장에 불이 켜졌을 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안고 자리를 뜨게 된다. 


생명 나눔의 깊이를 가깝게 느껴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이 연극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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