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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맺은 둘만의 약속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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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김성경 씨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2년 전 그맘때,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막내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당시 19살이었던 조성아 양은 뇌사 시 장기기증을 통해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뇌사장기기증인 故조성아 양 



경기도 여주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성경 씨는 가게 인근 골목에서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출입문을 바라본다.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막내딸 성아 양이 뛰어 들어와 성경 씨의 품 안으로 와락 안길 것만 같아서다.


"우리 성아는 지독한 '엄마 껌딱지'였어요." 사춘기 시절에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는 성아 양은 유독 엄마인 성경 씨를 잘 따랐다. 성경 씨가 빨래를 개고, 화단을 가꾸고, 살림살이를 정돈하는 그 모든 순간에 항상 옆자리를 지키던 이가 막내 성아 양이었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무얼 사달라 조르는 법이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돕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보탤 만큼 의젓했던 딸을 떠올리던 성경 씨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경찰을 꿈꾸었던 성아 양은 어려서부터 건강 하나는 타고 났었다. 단지 해를 거듭할수록 나빠지는 시력이 약간의 걱정이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던 성아가 어느날부터는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어요." 단순한 시력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곧장 딸을 데리고 서울의 대학병원을 찾아간 성경 씨는 그제야 딸의 시신경을 누르고 있던 것이 뇌종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서히 커가고 있는 뇌종양의 수술은 촌각을 다툴 만큼 위중한 상황이었다.


수술을 일주일 앞두고, 성아 양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딸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던 성경 씨는 곧장 여행길에 올랐다. 이른 새벽,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성경 씨는 약속했다. "성아야, 엄마만 믿어. 엄마가 잘될 거라고 말하면 항상 잘 돼 왔잖아. 수술만하면 우리 딸 금세 건강해질 거야." 성경 씨의 말에 안도하던 성아 양은 평소 모습처럼 씩씩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한시름 놓던 어느 날 밤, 병원에서 다급하게 성경 씨를 찾았다. 딸의 뇌부종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전화였다. 놀란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찾은 성경 씨는 딸을 보자마자 이름부터 불렀다. 


"성아가 제 목소리를 듣더니 성치 않은 몸으로 '엄마!'를 외치면서 벌떡 몸을 일으켰어요.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곧이어 성아 양은 의식을 잃었다. 그 후 성경 씨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당시 코로나19가 극심해 면회도 쉽지 않았지만, 성경 씨는 만사를 제쳐둔 채 매일 아침 첫차를 타고 성아 양을 만나러 갔다. 



뇌사장기기증인 故조성아 양 의 어머니 김성경 씨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그 생명을 단 1초 만이라도 우리 딸에게 나누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나 간절했던 성경 씨의 바람이 무색할만큼 성아 양의 생명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흐른 후, 성경 씨가 먼저 장기기증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불현듯 성아 양과 나누었던 둘만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경 씨는 2018년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나와 내 가족에게 장기이식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얼마나 간절하겠어요. 그래서 저도 간절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나눠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당시 엄마의 신분증에 붙은 장기기증 의사 표시 스티커를 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던 성아 양이 자신도 엄마처럼 생명을 나누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성경씨는 어린 딸의 결심이 내심 기특했지만,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나이가 되면 허락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희망등록 시기를 조금 미루었다. "그런데 성아가 19살이 되던 해, 정말 자신의 바람대로 생명을 나누고 떠난 거예요."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 조성아 양은 뇌사로 세상을 떠나며 장기부전환자 6명에게 새 생명을 전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5일은 성아 양의 18번째 생일이었다. 성아 양의 주민등록증을 찾아오던 날, 사망신고도 함께 해야 했다는 성경 씨는 지금도 딸의 사진을 꺼내 볼 용기조차 나지 않을 만큼 상심이 깊다고 말했다.



"유일한 위로는 여전히 성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 딸의 생명이 여전히 누군가의 몸속에서 

건강하게 숨 쉬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막내딸을 가슴에 묻은 성경 씨는 

자신도 언젠가 딸과 한 생명나눔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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