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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인과 이식인

"하늘에서 당신이 보내 준 선물을 받았어요"

  • 2021.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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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기증인 故 김일영 씨의 딸 주희 양, 아내 권서영 씨, 아들 민준 군의 모습


2012년 어버이날, 6살 민준 군은 고사리손으로 부모님을 위한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만든 카네이션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다. 2012년 5월 8일, 민준 군의 아버지 김일영 씨는 생명을 선물한 후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뇌사가 추정되는 상황입니다. 장기기증에 대해 한번 생각해 주세요.”

평범했던 일요일 오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딸과 함께 운동에 나섰던 김일영 씨는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병명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뇌사 상태가 추정되어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소견을 전한 의료진은 김 씨의 아내 권서영 씨에게 조심스레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남편이 뇌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는데….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대로 보낼 수가 없어서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남편이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3년 전, 김일영 씨와 권서영 씨 부부는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당시 생명을 나누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린 권 씨는 시어머니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어머니께서도 처음에는 아들을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생명을 살리는 의로운 일을 하고자 했던 아들의 뜻을 이어주자며 동의해 주셨어요.” 가족들의 숭고한 결정으로 2012년 5월 8일,故김일영 씨는 세상을 떠나며 신장과 간을 기증해 생면부지 환자들의 생명을 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아내 권 씨는 꿈에서 남편을 만났다. 평소 일을 할 때 입던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편은 권 씨를 안아준 뒤 사라졌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 권 씨는 마음의 큰 위로를 얻었다. 수많은 고민 속에 결정한 장기기증에 대해 남편이 ‘잘했다.’라고 직접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김일영 씨의 생명나눔은 아내 권 씨뿐 아니라 두 자녀에게도 깊은 자긍심을 남겼다. 어버이날을 맞아 유치원에서 만든 카네이션을 비록 아빠의 가슴에 달아드리지는 못했지만, 이후 9년 동안 민준 군의 가슴에는 아빠가 남긴 생명나눔의 자긍심이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것은 첫째 주희 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지원하고자 본부에서 시작한 D.F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주희 양과 민준 군은 “누군가의 삶에 기적을 선물한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라는 소감을 전하며 장기기증을 통해 환자들의 생명을 구한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뜻을 밝혔다. 아버지처럼 사회에 도움과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주희 양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을 꿈꾸고 있고, 아버지의 몫까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민준 군은 항공정비사를 꿈꾸고 있다. 


1.뇌사 장기기증인 故 김일영 씨의 모습  2. 생전 김일영 씨와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


김일영 씨의 나눔의 유산을 자양분 삼아 아이들이 바르게 커가는 동안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내 권서영 씨는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갑작스레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다는 권 씨는 “남편의 나눔을 기억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참 감사해요. D.F장학회의 장학생으로 두 아이가 선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에서 남편이 준 선물같아 큰 힘이 되었어요.”라는 소감을 전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김일영 씨는 언제나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장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고, 2주에 한 번씩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주기적으로 참여하며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 평소 입버릇처럼 ‘나누며 살아야 한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는 고인은 마지막 순간,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나누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던 환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남편의 생명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실 분들이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궁금해요. 그분들이 어디에 계시든 하나만 약속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남편이자 아들이자 아빠였던 사람이었으니 그 생명을 이어받은 분들도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 주셨으면 해요. 남편의 몫까지 2배, 3배 더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저도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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