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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에 대해 생각하며 자라는 어린이들

  •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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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기기증 서약을 2022년에 했습니다. '나도 장기기증 서약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처음 한 건 2004년입니다.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자그마치 18년이 걸렸습니다. 장기기증 서약을 하셨든 아직이든, 여러분께서 처음으로 장기기증을 다짐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먼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제 계기는 MBC 프로그램 '눈을 떠요!'입니다. 당시 저는 '테레비(텔레비전)'를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낮 시간대 어린이 드라마부터 늦은 밤의 외화까지 다 봤죠. 그런 제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 '눈을 떠요!'입니다. 감동도 컸고, 많이 곱씹어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유튜브에 들어가 몇 편을 다시 봤습니다. 그러자 그 시절 텔레비전 앞 풍경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토요일 밤, 잘 준비를 마치고 뚱뚱한 브라운관 앞에 앉습니다. 시작은 선비처럼 정자세로 합니다. 그러다 잠시 소파에 올라가기도 하고, 눕기도 하죠. 한 자세를 20분 넘게 유지하지는 못하는 꼬마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꽤 집중하면서 봤습니다.


어김없이 눈물이 고이는 순간은 매 회차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친 주인공이 눈에 붕대를 감은 채 가족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옵니다. 이후 붕대를 풀고 선명해진 세상을 바라보죠. 처음 본 풍경은 가족입니다. 주인공이 가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말하면 눈물이 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장기기증할 거야” 프로그램이 끝난 후 옆에서 같이 보던 엄마께 말씀드렸죠. 엄마께서 '절대 하지 마'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건 좋은 일이야' 정도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잠자러 불을 끄고 누워도 바로 잠이 오지는 않습니다. 생각이 많아져서요. 눈을 슬쩍 떠보면 세상이 캄캄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걸까', '얼마나 궁금했을까', '답답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래도 스르르 잠들 시간이 다가옵니다. 다음날 'TV 동물농장'을 처음부터 봐야 하기 때문에요.


어린이들에게 장기기증을 알리는 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몸이) 작은 동료 시민' 시절에 장기기증을 다짐했습니다. 또 장기기증을 다짐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누군가의 동료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눈을 떠요!'를 통해 상대의 처지에 귀 기울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연습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은 동료 시민들과 장기기증이 저절로 만나는 일은 드뭅니다. 그러니 '(몸이) 큰 동료 시민'들이 그 계기를 만들 수는 있겠지요. 최근에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가 그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장기기증을 통해 튼튼한 새 심장을 갖고 자라게 된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슬의생'을 본 2021년의 어린이들도 과거의 저처럼 장기기증을 다짐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다행히 요즘 학교에서 장기기증을 접할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19년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생명존중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그림책을 같이 읽습니다. 주인공 '심장이'가 같이 지내던 '밥 아저씨'와 이별하고 새롭게 같이 살 인간에게 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는 생명을 선물한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습니다. 초등학생 어린이들이 '장기기증인들은 영웅'이라고 수업 후기에 적어냈다고 하네요.



이런 계기를 통해 장기기증을 다짐한 어린이는 만 16세가 되면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더 자란 어른들에게도 신청은 열려있습니다. 공휴일에도 가능하답니다. 제가 주말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기 때문에 장담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 주소 검색부터 신청을 완료하기까지 3분 정도 걸렸습니다.


저는 18년 만에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다짐을 되살릴 '리마인더'도 더 많아져야겠습니다. 일단 저는 부지런히 장기기증 이야기를 전달하겠습니다. 제 기사를 본 독자께서 서약하실지도 모르니까요. 또 기사를 본 창작자가 장기기증 이야기를 창작물로 만들 수도 있겠지요.


신청을 완료하고 보니 신분증에 붙이는 장기기증 의사 표시 스티커가 곧 배송된다고 합니다. 간만에 블로그에 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제 친구들이 제 기사는 안 볼지언정 블로그에 올린 일기는 볼 것 같거든요. 친구들이 작은 동료 시민 시절에 '눈을 떠요!'를 보며 했던 다짐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이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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