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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야기

기증인과 이식인

가족도 생명나눔도 계획했다면 못했을 걸요?

  • 2020. 05. 13
  • 이 게시글을 608명이 보았습니다.

지난 2003년 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임정근 목사.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다음세대를품는교회’를 담임하는 그는 교회 이름 그대로 여러 아이들을 양팔 가득 사랑으로 품은 채 살고 있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17년 만에 임 목사를 다시 찾은 이유는 남부럽지 않을 행복한 가정을 이룬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장기증인 임정근 목사



자녀에게 얻은 행복 나누려 

생명나눔


임 목사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손주들도 있지만 여전히 주위에서 다둥이 아빠로 불린다. 뒤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한 그는 2002년, 고향집이 있던 자리에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시작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이듬해 겨울, 집을 헐어버린 탓에 온 가족은 컨테이너박스에서 지내야했다. 잠자려 누우면 입에서 김이 나고 젖은 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면 얼어서 떨어지지 않던 그 시절, 그러나 가족들의 입에서는 불평이 아닌 웃음이 넘쳤다. 새로운 가족이 된 한나 양 덕분이었다.


“태어난 지 45일 된 한나를 처음 안았을 때 감동이 잊히질 않아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죠. 추위도 잊고 아내와 함께 얼굴이 닳도록 딸을 바라본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이들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딸 한나 양은 당시 군복무 중이던 첫째 태호 씨와 둘째 승호 씨에 이어 예쁜 셋째이자 첫 딸이 됐다. 17년이 흐른 지금 갓난쟁이였던 한나 양은 키가 170cm가 넘는 고3 숙녀로 성장했고, 그 사이 한나 양 밑으로 5명의 동생이 더 생겼다.


그중 11살인 막내아이와 첫째 태호 씨가 결혼해 낳은 큰 손자는 겨우 두 살 차이다. 임 목사는 “그럼에도 꼬박꼬박 삼촌이라고 부르며 둘이 가장 잘 어울린다”며 즐거워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 목사 부부는 꿈과 사랑 그룹홈의 아버지, 어머니로서 6명의 아이를 더 품고 있다. 교회 개척과 함께 시작한 그룹홈을 거쳐간아이들만 서른 명 남짓. 이 때문에 명절만 되면 발 디

딜 틈이 없을 정도로 집이 가득 찬다. 가끔은 힘들 때가 없는지 묻자 그는 “아이들이 찾아올 곳,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게 좋은 거죠. 아이들에게 그 언덕이 되어주고 싶어요. 오히려 아이들 덕분에 늘 행복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가 실천한 신장기증도 감사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한나 양을 가족으로 맞이한 뒤 기쁜 나날을 보내던 중 문득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영광을 내가 다 받아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에 우연히 생명나눔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하다가 뭘 잘못 눌렀는지 갑자기 생존 시 신장기증에 대해 소개하는 화면으로 연결이 된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바로 기증 신청을 해버렸어요. 지금도 왜 그 페이지가 떴는지는 의문이에요. 하하.”



생명을 향한 간절한 소망, 

가정을 살리다


임 목사는 수술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이 기증한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고 했다. 최근에는 건강검진을 받던 중 의사가 배 구석구석을 초음파로 촬영하며 심각한 얼굴로 신장 하나를 못 찾겠다고 하는 통에 뒤늦게 기증 사실을 고백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기증 후 퇴원을 앞두고 한 차례 스쳐지나간 이식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건강하기만을 소원했다.

“당시 이식인에게 자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건강히 돌아온 엄마와 함께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랐을 거라고 믿어요. 장기기증은 한사람을 살릴 뿐만아니라 가정을 살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빛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목사가 18년 전 교회 개척 후 가장 어려울 때 한나양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목적이 바로 생명에 있다는 결론에서였다. 신장기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많은 아이들을 품고 또 신장을 기증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도 더 일찍 알지 못해 더 많은 영혼을 품고, 더 건강한 신장을 기증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임정근 목사와 아내 고영숙 사모


인터뷰 중 그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이제 아빠엄마가 늙으면 어떻게 하냐고 장난으로 물었더니 한나가 ‘우리가 몇 남매인데 두 분 못 모시겠냐’고 대답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라며 자녀들의 따뜻한 심성을 자랑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인생이 어느 하나 계획대로 된 게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임 목사의 삶은 자녀들 덕분에 이미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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