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로고

희망이야기

함께하는 사람들

슬기로운 응답

  • 2021. 12. 10
  • 이 게시글을 292명이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른바 ‘쫄보’였던 저는 장기기증이란 말만 들어도 무서웠습니다. 눈을 질끈 감아야 주사도 겨우 맞는 저에게 장기기증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드라마를 보며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장기기증의 절차와 과정, 그 속에서 겪는 가족들과 의료진의 감정을 세세히 풀어낸 <슬기로운 의사생활2> 덕분입니다.갑작스럽게 심장에 문제가 생겨 심장 이식을 받아야만 했던 민찬이. 어린 아이일수록 크기가 맞는 장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는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디어 나타난 기증인. 민찬이 부모님은 담당 의사인 김준완(정경호) 교수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때 준완은 “감사는 힘든 결정을 해 주신 기증인의 가족들에게 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전합니다. 민찬이의 부모님은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답합니다. 이 말은 곧 닿을 수 없는 뇌사장기기증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 봅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아이 은지. 병원에서 가장 오래 심장 보조기를 달고 있던 어린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심장을 받게 돼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마냥 기뻐할 순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큰 축복이고 기적이지만, 다른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 불행인데 내가 매일 밤 그러기를 바란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은지 엄마의 말입니다. 장기기증인과 이식인 모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증인을 기다리는 부모의 애타는 마음, 수개월 끝에 기증인이 나타나도 마냥 기쁠 수만 없는 가족들, 감사의 표현을 전하고 싶지만 기증인과 유가족에게 닿을 수 없는 편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가 평소에 쉽게 알 수 없었던 장기기증의 소중함을 일깨웠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런 생각은 저만 했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2> 방영 후, 장기기증 희망등록이 전년 동기간 대비 11배 늘었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은 “슬의생을 통해 장기기증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이식인과 가족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의 마지막 한 순간에 가치 있는 선택으로 누군가에게 한줄기 빛이 되고 싶어졌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장기기증 등록자가 늘었다 할지라도 해외와 비교해 보면 한국의 장기기증 사례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인구 백만 명당 뇌사 장기기증자 수를 나타내는 PMP 수치를 보면 미국은 38명, 스페인 37명, 포르투갈 24명, 프랑스 23명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9명에 불과합니다. 이렇다 보니 장기기증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환자는 4만 2천 명이 훌쩍 넘는데,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은 478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심각합니다. 코로나 이전 대비 25% 정도 장기기증 희망등록자가 줄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평균 6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장기기증을 통해 최대 아홉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증인은 죽지 않습니다. 이식인에 의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름만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살아있고 싶습니다. ‘쫄보’였던 저도 ‘죽어서 뭘 남기려 하냐’는 물음에 슬기로운 응답을 해보려 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뀌게 되길 소망해 봅니다.


GOODTV 

하나은 기자

목록으로

추천이야기

  • MZ세대, 20대의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이 가장 높은 이유는?

  • 영원한 1번, 우리 딸

  • 다시 찾은 찬미한 일상

  • 우리는 모두 생명나눔 Hero입니다.

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