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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이웃

“마지막 생일,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어머니”

  •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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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기증인 故 박찬순 씨


 지난해 겨울, 75세의 한 여성이 장기기증을 통해 4명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전했다. 오래 전 장기기증을 약속하고, 평소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왔다는 고인은 마지막 순간, 장기이식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환자들에게 천사와 같은 은인이 되었다. 


지난해 11월 17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던 박찬순 씨는 발을 헛딛는 바람에 계단에서 넘어졌다. 계단 옆에는 묵직한 쇳덩이가 놓여있었고, 그녀는 넘어지며 그곳에 머리를 부딪쳤다. ‘쿵!’ 큰 소리에 놀란 이웃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괜찮으세요?” 박 씨는 이웃의 목소리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다시 집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맏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가 많이 납니다. 빨리 와주세요.” 박 씨는 이 두 마디 말을 남긴 채전화를 끊었다. 


이른 아침,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딸 이영신 씨는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근처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집에 가까이 갈수록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도착했을 당시, 집안 곳곳에는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고, 구급차 안에는 머리를 크게 다친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박 씨는 좀처럼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은 뇌출혈이 워낙 크게 진행되었고, 뇌 기능도 많이 소실되어 수술을 해도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전했다. 가족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는 가운데, 딸 영신 씨는 “내가 잘못되거든 절대 연명치료는 하지 말고, 꼭 장기기증을 해다오.”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난 2010년, 박 씨는 출석하던 성천교회에서 진행된 생명나눔예배를 통해 장기기증을 약속했다. 이후 자녀들에게입버릇처럼 ‘장기기증’에 대한 당부를 해왔다.  



뇌사 장기기증인 故 박찬순 씨


“어머니는 평소 누구보다 강하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았던 분이에요. 비슷한 또래 권사님들과의 모임에서 ‘내가 이중에서 첫 번째로 천국에 갈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 어머니께서 천국으로 떠나는 마지막 길에 소중한 약속을 꼭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사고 후 며칠 뒤, 박 씨는 중환자실에서 75번째 생일을 맞았다. 딸 영신 씨는 면회시간, 의식이 없는 어머니의 귓가에 휴대폰을 조심히 가져다댔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생일 축하합니다.” 휴대폰에서는 아직 어린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부른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다음 날, 사랑하는 이들의 노래 속에서 마지막 생일을 보낸 박 씨의 뇌사 판정 절차가 이루어졌다. 


여행지에서 찍은 박 씨와 가족들의 사진


그리고 11월 21일, 박 씨는 평소 소망하던 천국으로 떠나며 장기기증을 실천해 4명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호탕한 성격에,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박찬순 씨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밝고 친절한 ‘권사님’으로 남아있다. 


교회에서 궂은일도 마다않고,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섬기던 박 씨는오랜 기간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들을 위해 아침밥을 대접해 왔다. 딸 영신 씨는 “어릴 때를 떠올리면, 집에 항상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던 게 생각나요. 저희 집이 꼭 사랑방 같았는데, 어머니께서 워낙 베풀고, 섬기는 걸 좋아하셔서 교회 분들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어요.”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12년 전, 뇌종양으로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긴 적도 있는 박 씨는 가족들의 기억 속에 ‘항상 천국을 소망하던 어머니’로 남아있다. 평생 성실히 교회를 섬기며, 깊은 신앙심을 가진 박 씨에게 천국은 자신이 돌아갈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오래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막내딸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20여 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박 씨의 막내딸은 패혈증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이후 박 씨는 가슴에 묻은 막내딸의 사진을 항상지갑 속에 품고 다녔다. 


딸 영신 씨는 “막냇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저희 가족은 각막기증을 생각했었어요. 눈이 정말 예뻤거든요. 누군가 동생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패혈증이라 아무것도 기증할 수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어머니께서 4명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전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참 감사한 것 같아요.”라는 뜻을 전했다.        


여행지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던 영신 씨는 “그래도 어머니와 수많은 곳을 함께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서 다행이에요.”라며 “이 세상 여행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께서도 생명을 나누신 걸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어머니의 생명을 이어받은 분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생활하시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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