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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과 죽음준비교육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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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인복지를 전공한 사회복지사로, 2004년 첫 공개강좌를 시작해 20년 넘게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흔히 '웰다잉(Well-dying)'이라고 부르는,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들을 함께 나누고 고민하면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기기증을 알게 되었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만났습니다.


유경 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오래전 본부와 연계해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목의 강의로 서울과 경기 지역의 다양한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죽음준비와 장기기증 수업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제가 진행하는 죽음준비학교 학생들을 위해 본부에서 장기기증 강의를 맡아주시고, 어르신들의 본부견학까지 기꺼이 지원해 주신 따뜻한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2018년에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인 도너패밀리 모임과 1박 2일 캠프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고, 2024년에는 장기기증 희망등록자와 후원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리본클래스'에서 웰다잉 특강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지난해 진행된 '리본클래스'에는 장기기증을 약속하며 삶의 의미와 사랑의 실천에 대해 이미 많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 참석해, 그 누구보다 죽음준비에 대해 진지하게 귀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체험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죽음준비는 당장 죽자는 것도, 죽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죽는 연습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 즉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죽음을 늘 기억하면,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슬프고, 어둡지 않을까 걱정이 될 겁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죽음준비 교육을 받은 많은 분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을 맞게 될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많이 사랑하면서, 좀 더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죽음준비교육은 곧 제대로 살기 위한 삶의 교육이기도 합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지금 여기서 정성껏 사는 일이 바로 죽음준비라면, 생명을 나누겠다는 장기기증 약속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삶을 보다 정성껏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결단입니다. 또한 소중한 생명을 살리며 떠나는 일이 나와 내 가족이 선택한 의미 있는 죽음의 방식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죽음준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들어갈까요?


첫째,몸의 준비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의사 2명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고 판단했을 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 더불어 장기기증이나 호스피스 관련 희망 사항도 미리 밝혀두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준비입니다. 죽음을 단순한 치료의 실패가 아니라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이 마음의 준비입니다. 


셋째,법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유언과 상속에 대해 알아야 제대로 잘 정리하고 떠날 수 있습니다. 


넷째, 장례와 장묘에 대해 고민해야합니다. 이는 내 삶의 뒷마무리를 내 손으로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떠나고 난 자리가 깨끗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길 원한다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다섯째, 사별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나누는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준비는 나 자신의 죽음준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사별의 아픔을 겪고있는 주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살피며 위로하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웰다잉', '죽음준비'가 마치 유행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죽음준비는 흥미 위주의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일회성 행사나 유행처럼 남이 하니 나도 한번 해본다는 식의 차원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죽음준비교육 현장 전문가로서 바라기는, 본부가 오래도록 축적해 온 경험의 토대 위에 제대로 된 웰다잉 교육을 접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좀 더 많은 분이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곱씹어보고, 앞서 떠난 분들의 발자취를 통해 내 앞에 놓인 인생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은 물론 우리 사회 웰다잉 문화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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